[하비엔=노이슬 기자] '연기神' 설경구의 첫 사극이다. 처음이지만, 마치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설경구는 <자산어보>에서 이름조차 잘 알지 못했던 정약전이라는 역사 속 인물을 스크린에 그려내며 또 한번 '대체불가 필모'를 추가했다.
설경구는 이준익 감독의 열 네번째 영화 <자산어보>에서 흑산도로 유배 온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으로 분했다. 첫 사극 영화 <자산어보>를 만나게 된 것은 계획에 없던 우연이었다.
"감독님을 되게 오래간만에 영화제 시상식에서 봬서 느닷없이 작품을 하실 때가 된거 같아서 '책주세요' 한 것이다. 사극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더라. 사극 안해봤다고 했더니 정리 중이라고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바로 온 것이 <자산어보>였다. 감독님과 해야겠다는 필이 온 것은 아니었다(웃음)."
<자산어보>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설경구)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설경구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보면서 한번에 감정이 온 것이 아니라, 젖어가면서 눈물을 흘림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자산어보>라고 하는 것은 큰 사건이 없다. 신유박해라는 큰 틀의 사건은 흑산도에 들어간 배경 때문에 필요했다. 서학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흑산도에 들어가서 살면서 소소한 이야기 위주다. 창대(변요한)가 글을 배우고 출세길에 오르고 싶은 욕망. 그 또한 일상의 이야기라면 큰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자산어보>는 쉽고 즐거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비극이 아닌 희망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소소한 것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억이다."
정약전은 동생 정약용보다는 대중에 익히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정약용의 경우 대표저서 [목민심서]가 있지만, 정약전은 영화 <자산어보>가 아니었다면 사실상 알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의 제자인 창대 또한 그렇다. 사극도 처음, 정약전이라는 인물도 생소했던 설경구는 학자 인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쓰게 된 배경에 집중했다.
"약전이 약용보다는 덜 알려진 정도가 아니라 많이 모르신다. 남긴 책도 얼마 없다. 약전이란 인물은 그 시대에는 정말 위험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임금까지도 없는 세상을 꿈꾼다. 정말 위험한 인물이다.
한편으로는 책을 못 쓴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는데 천재적인 학자이지만 [자산어보] 같은 전문서적, 그 시대의 관료들, 백성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지침서를 쓴 것이 아니라 어류에 대해서 쓴 것은 사상을 글로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책으로 나오면 동생이나 식구들이 위험해질 것 같아서 내면의 아픔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경구는 약전을 '배척당한 지식인'이라 칭하며 연민을 가졌다. "촬영 전에 약전에 대한 생각과 고민 아닌 고민을 하면서 아, 이런 인물이겠구나 생각하고 시작했다. 너무 강하다보니 연민도 들 수 있는 것이다. 막상 촬영 현장에 가서 사극 톤에 대한 걱정도 했다. 옛 경어에 대한 어색함도 있고 우려도 있었다. 그게 제일 걱정됐다. 근데 나 편한대로 했더니 별 말씀 없으셨다. 그 다음부터는 의심안하고 잘 했던 거 같다."
설경구는 <자산어보> 촬영 후 사극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사극은 내가 안 가본 세상,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는 것이 매력이다. <자산어보>는 거의 창작물이다. 다른 작품을 통해 창작자의 생각과 실제 사건이 충돌하면서 파생되는 글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총 천연색. 퓨전 사극 느낌이 아닌, 그 시대의 톤을 잘 살린 사극에 출연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많이 생겼다."
<자산어보>는 실제 흑산도에서 촬영됐다. 촬영 기간동안 태풍을 무려 3차례나 맞았다. 극 중 약전의 새 식구가 된 가거댁(이정은) 집 세트가 날아갈까 현지 주민들이 세트 자체를 꽁공 묶어서 집을 살리기도 했단다.
[저작권자ⓒ 하비엔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