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in] 대한민국 차세대 구축함, ‘관행’ 아닌 ‘기술력’ 우선돼야

윤대헌 기자 / 기사승인 : 2024-05-02 14: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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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엔뉴스 = 윤대헌 기자]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세종대왕함을 시작으로 현재 3척의 이지함을 보유하고 있다. 이지스함의 막대한 위력은 미국 록히드마틴의 이지스 전투 체계가 탑재됐기 때문이다. 몸통은 국내 기술로 제작되지만, 운영체계는 아직 미국의 힘을 빌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순수 국내 기술로 구축함을 제작하기 위해 KDDX(한국형차기구축함)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책사업인 KDDX 사업은 약 8조원을 투입해 오는 2036년까지 6000톤급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24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2024 이순신 방위산업전(YIDEX)’에서 참석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현재 KDDX 사업은 한화오션이 개념설계를,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각각 맡았다.

 

개념설계는 함정 초안을 그리는 것이고, 기본설계는 함정에 탑재되는 무기체계와 각종 장비 등을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개념 및 기본설계가 끝나면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과정이 이뤄지는 데, 방위사업청은 앞서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과 수의계약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오션은 우리나라 해군이 국산 구축함으로 처음 도입한 KDX-I 광개토대왕함을 순수 국내 기술로 건조했고, KDX-II 충무공이순신함은 국내 최초로 스텔스 설계를 적용한 구축함이다.

 

특히 KDX-III 율곡이이함 건조 시 한화오션이 도입한 업계 최초의 블루스카이 로드아웃 공법은 이후 전 세계 이지스함 건조 과정에서 롤모델이 됐고, 지난해 국방과학연구소가 대한민국 현존 전투함 가운데 가장 조용한 함정으로 선정한 대구함 역시 한화오션이 건조한 구축함이다.

 

이 가운데 지난 2003년 12월 한화오션이 해군에 인도한 충무공이순신함은 당시 수중방사소음 문제가 지적됐다.

 

관계자들의 확인 결과에 따르면, 이같은 문제는 기관계통장비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본설계 수행 중 잘못된 기자재가 선정됐다. 당시 기본설계를 맡았던 HD현대중공업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HD현대중공업 측은 “기관계통장비는 관급 방식으로 선정돼 방사청이 입찰을 진행하는 만큼 기본설계 업체가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다”라며 “충무공이순신함의 경우 기본설계와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업체가 달라 수중방사소음 문제의 귀책이 불분명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기본설계 수행업체의 의무는 방위사업청(당시 해군)에서 요구하는 스피드, 소음 등의 성능 요구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비록 관급이고 해당 장비의 계약 주체와 공급 주체가 방사청이지만, 장비에 대한 요구 조건이나 요구 사양에 대한 검토와 성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기본설계 수행 업체의 몫이라는 것이다.

 

한화오션은 기본설계 당시 발생했던 충무공이순신함의 결함을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 과정에서 발견해 승조원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개선해 인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한화오션은 이번 KDDX 사업과 관련해 그간의 ‘관행’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방위력 개선사업 관리규정에 따른 ‘특별한 사유’가 있는 업체에 후속 사업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방위력 개선사업 관리규정에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행하게 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는 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해 연속성이 떨어지지 않게 기본설계를 한 업체가 수의계약을 통해 맡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17번의 사업자 선정과정에서도 ‘특별한 사유’가 없어 기본설계 수행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업체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업체 선정에 앞서 ‘특별한 사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직원 9명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받았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지난 2022년 11월부터 3년간 입찰에서 보안 감점(1.8점)을 받는다.

 

또 지난 2020년 기본설계 업체 선정 과정에서 HD현대중공업은 방위사업청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경찰은 왕정홍 전 방사청장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사업청은 또 지난 2월에 열린 계약심의위원회를 통해 HD현대중공업에 ‘행정지도’ 처분을 내렸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방위력개선사업관리규정 제226조(상세설계 및 함건조 계획)에 명시된 ‘특별한 사유’는 해당 업체의 부도, 부정당업체제재처분, 천재지변, 상세설계·함건조에 대한 협상결여 4가지다”라며 “HD현대중공업은 지난 2월27일 방위사업청 계약심의위원회에서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를 ‘행정지도’로 의결해 특별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화오션은 그러나 그동안 다수의 문제가 발생한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진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맡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HD현대중공업 임원 고발 사건에 대해 현재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인 만큼 그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은 ‘특별한 사유’로 보여지는 사건이 발생한 만큼 그간의 ‘관행’에서 벗어나 경쟁입찰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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